인생은 아름다워 (비소세포암, 첫사랑, 시한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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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은 아름다워 포스터 결혼한 지 수십 년이 지나도 생일 한 번 제대로 챙겨받지 못한 아내가 있습니다. 저는 영화 예고편을 보다가 그 장면에서 멈칫했습니다. 셀프로 미역국을 끓이는 세연의 모습이, 남 얘기처럼 느껴지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영화 <인생은 아름다워>는 시한부 판정을 받은 아내와 무뚝뚝한 남편이 첫사랑을 찾아 떠나는 이야기입니다. 비소세포암 선암, 남편만 아는 비밀 영화의 출발점은 묵직합니다. 건강검진 결과 세연은 비소세포암(non-small cell lung cancer) 선암 말기 판정을 받습니다. 비소세포암이란 폐암의 한 종류로, 전체 폐암의 약 85%를 차지하는 가장 흔한 유형입니다. 그중 선암(adenocarcinoma)은 폐 주변부에서 발생하는 세포 형태를 말하는데, 비흡연 여성에게도 나타나는 경우가 적지 않습니다. 국립암센터 에 따르면 폐암은 국내 암 사망률 1위를 수십 년째 유지하고 있으며, 특히 선암의 경우 초기 증상이 뚜렷하지 않아 말기에 발견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문제는 이 사실을 세연 본인은 모른다는 겁니다. 진봉 혼자 보호자 자격으로 먼저 진단 결과를 듣습니다. 아내가 뒤늦게 헐레벌떡 도착해 "우리도 공기청정기 하나 살까?"라고 해맑게 말하는 장면은, 솔직히 보는 저도 가슴이 내려앉았습니다. 예후(prognosis)가 좋지 않다는 의사의 말은 쉽게 말해 치료 후 생존 가능성이 낮다는 뜻입니다. 진봉은 그 자리에서 아무 말도 못 하고, 그날 밤 혼자 술을 들이붓습니다. 이 설정에 대해 "아내에게 진실을 숨기는 건 비윤리적"이라고 보는 시각도 있습니다. 저는 그 의견을 이해하면서도, 동시에 진봉의 침묵이 단순한 은폐가 아니라 공황에 가까운 반응이라는 점을 더 중요하게 봤습니다. 갑작스러운 상실 앞에서 인간은 종종 현실 부정(denial)이라는 심리적 방어기제를 먼저 꺼냅니다. 현실 부정이란 충격적인 사실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일시적으로 무감각해지는 반응으로, 슬픔의 첫 단계로 ...

원 배틀 애프터 어나더 (서사, 풍자, 혁명)



원 배틀 애프터 어나더 포스터
원 배틀 애프터 어나더 포스터

솔직히 저는 이 영화를 보기 전까지 PTA 감독이 이 규모의 상업적 스펙터클을 만들 사람이라고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폴 토마스 앤더슨 감독의 신작 '원 배틀 애프터 어나더'는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 존 펜, 베니치오 델 토로가 출연하는 블랙 코미디 추격 도주극으로, 보고 나서 한동안 자리에서 일어나지 못했습니다. 화면 밖으로도 계속 무언가가 튀어나오는 느낌이랄까요.

이 영화가 오스카를 노린다고? 그 이유가 뭘까

전 세계 평단이 이 영화를 이번 시즌 오스카의 유력 후보로 거론하는 이유가 처음엔 잘 와닿지 않았습니다. 화려한 캐스팅과 PTA 최대 예산이라는 수식어만으로는 설명이 되지 않았거든요. 그런데 극장을 나오고 나서 답이 보였습니다. 이 영화는 시의성(timeliness), 즉 지금 이 순간과 정확히 맞닿아 있다는 점에서 압도적입니다. 시의성이란 작품이 발표되는 시점의 사회적 맥락과 얼마나 밀접하게 맞물리는지를 나타내는 개념으로, 단순히 '요즘 이슈를 다뤘다'는 것과는 다릅니다. 이 영화는 60년대 미국의 언어와 이미지를 불러와 오늘날의 권력 충돌을 비추는 거울로 사용합니다.

코인텔프로(COINTELPRO)라는 실존 프로그램도 영화 속에 녹아들어 있습니다. 코인텔프로란 1950~70년대 FBI가 급진 세력을 무력화하기 위해 운영한 비밀 공작 프로그램으로, 특히 흑인 여성 활동가에게는 더 가혹한 중형이 선고되는 이중의 낙인이 작동했습니다. 영화가 이 역사적 맥락을 억지스럽게 설명하지 않고 대사 한 줄, 장면 하나에 자연스럽게 녹여낸다는 점이 제 경험상 PTA 연출의 가장 뛰어난 부분이었습니다. 풍자성(satire)도 마찬가지입니다. 풍자란 현실의 모순과 부조리를 비틀어 웃음과 비판을 동시에 유발하는 기법인데, 이 영화는 웃음과 불편함의 경계를 아슬아슬하게 타고 달립니다.

서사 구조: 초반 30분이 영화 전체를 결정한다

영화는 멕시코 국경 이민자 구금소에서 저항세력 '프렌치 75'가 군기지를 습격하는 장면으로 시작합니다. 프렌치 75는 1차 세계대전 당시 프랑스군이 사용한 75mm 야포에서 따온 명칭으로, 빠르고 정밀한 무기였기에 이 조직의 이름 자체가 격렬하고 무력적인 저항을 상징합니다. 그리고 그 조직은 결국 내부 분열과 자멸로 끝납니다. 이름과 결말이 이미 대조를 이루고 있는 셈이죠.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가 연기하는 주인공 개토는 화약 전문가입니다. 화려한 전방이 아니라 바깥에서 폭발물 뇌관을 설계하는 역할, 어떻게 보면 초라하게 보일 수 있는 자리입니다. 그런데 저는 이 설정이 굉장히 영리하다고 봤습니다. 스펙터클한 혁명의 중심이 아니라 그 주변부에서 묵묵히 일하는 사람이 나중에 진짜 혁명을 보여주는 인물로 성장하니까요. 개토는 급진적 아나키스트 퍼피디아의 카리스마에 매혹되어 있고, 퍼피디아는 IC 부대장 스티븐 록조 대령을 성적으로 모욕하며 복수의 씨앗을 심습니다. 이 초반 30분이 영화 전체의 뼈대입니다. 이후 모든 갈등과 감정선은 여기서 뻗어 나옵니다.

퍼피디아는 임신 후에도 과격한 활동을 멈추지 않고 은행을 털다 경비를 사살한 뒤 체포되어 동료를 밀고합니다. 저는 이 장면에서 '혁명을 한다는 욕망'과 '실제로 혁명을 감당하는 무게'가 충돌하는 지점을 봤습니다. 동료들은 록조에게 사살당하고 록조는 훈장을 받습니다. 그 단순하고도 잔인한 결말이 오래 머릿속에 남았습니다.

영화가 다루는 핵심 역사·사회적 배경을 정리하면 이렇습니다.

  1. 코인텔프로(COINTELPRO): FBI의 비밀 급진 세력 무력화 프로그램으로, 흑인 여성 활동가에게 특히 가혹한 이중 낙인이 적용됨
  2. 짐 크로우법(Jim Crow Laws): 미국 남부에서 시행된 인종 분리 및 차별을 합법화한 법률 체계
  3. 러빙 대 버지니아 판결(Loving v. Virginia, 1967): 인종 간 결혼 금지법이 위헌임을 확정한 미국 대법원 판결로, 그 이전까지 법적으로 인종 간 결혼이 금지되어 있었음(출처: Oyez 판례 데이터베이스)
  4. 보헤미안 그로브(Bohemian Grove): 캘리포니아 북부 산악 지대에 실존하는 은밀한 권력층 클럽으로, 영화 속 '크리스마스 모험가 클럽'의 모델 중 하나

록조라는 캐릭터, 그리고 존 펜의 연기가 남긴 것

존 펜이 연기하는 록조는 이 영화에서 가장 입체적인 인물입니다. 제 경험상 단순한 악당 캐릭터는 보고 나면 금방 잊히는데, 록조는 달랐습니다. 그는 퍼피디아와 개토의 딸 윌라를 잡고 "쥐새끼인 어미와 기질이 비슷하다"고 말합니다. 이건 단순한 인신공격이 아닙니다. 태생부터 결함이 있다는 선언이자 세대를 넘는 멸시입니다. 존재 자체를 부정하는 언어입니다.

록조는 또 윌라에게 왜 화장을 하지 않냐고 압박합니다. 사회적으로 요구되는 성적 코드(gender code)를 강요하는 장면인데, 성적 코드란 사회가 특정 성별에게 기대하는 외모·행동·역할의 규범을 말합니다. 그런데 윌라는 그 순간 오히려 록조의 과잉된 남성성과 그 안에 숨은 불안함을 정확히 간파합니다. 저는 이 장면을 보면서 이 영화가 단순히 권력을 비판하는 게 아니라, 권력이 어떻게 스스로를 무너뜨리는지를 보여주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록조의 모순이 정점에 달하는 순간은 크리스마스 모험가 클럽 면접 자리입니다. 그가 입회를 원하는 이 조직은 보헤미안 그로브와 KKK단, 일루미나티를 합친 성격의 백인 우월주의 사교 모임으로 묘사됩니다. 그런데 그 자리에서 록조는 "나는 피해자였다"는 식으로 발언합니다. 자신이 평생 집착해 온 가치 체계를 스스로 전복하는 이 아이러니가 영화에서 가장 강렬한 장면 중 하나였습니다. 그리고 그는 변변찮은 사무실 한 코너에서 최후를 맞습니다. 훈장을 받았던 그 남자의 끝이 그렇습니다.

이 영화에 대한 평단의 반응도 주목할 만합니다. 메타크리틱(Metacritic) 기준으로 공개 직후 높은 메타스코어를 기록하며 PTA 필모그래피 중에서도 상위권으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메타스코어란 전문 비평가들의 리뷰를 수치화한 종합 점수로, 단순 관객 반응과는 구분됩니다.

진짜 혁명은 어디서 시작되는가

이 질문이 결국 이 영화 전체를 관통합니다. 영화는 초반에 혁명을 스펙터클하게, 심지어 멋지게 보여줍니다. 암호, 폭발, 총기, 급진적 언어. 보는 사람을 흥분시키려는 의도가 분명합니다. 그런데 그 흥분이 가라앉고 나면 무엇이 남을까요?

16년 뒤의 개토, 즉 바퍼거슨이라는 이름으로 숨어 사는 그는 술독에 빠져 있습니다. 혁명의 영웅이 아닙니다. 그런데 그는 딸 윌라를 키우기 위해 나름의 최선을 다하고 있습니다. 영화 초반에 그가 폭발물 뇌관을 설계하던 모습처럼, 그는 화려한 중심이 아닌 묵묵한 자리에서 헌신합니다. 세르지오 센세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가라데를 가르치고 비밀 탈출망을 운영하는 그는 언뜻 영화의 양념처럼 보이지만, 그 헌신의 방식이 개토와 정확히 겹칩니다.

윌라가 아빠의 옛 지인에게서 '그린 에이커스', '베버리 힐빌리즈' 같은 60년대 TV쇼 제목을 연결한 암호를 듣고 따라가는 장면도 인상적이었습니다. 그 암호가 맞아서가 아니라, 그 암호를 믿으라고 한 아빠를 믿기 때문에 따라간다는 것. 이 장면 하나로 영화가 하고 싶은 말이 다 담겨 있다고 저는 생각했습니다. 진짜 관계와 무조건적인 사랑은 어떤 이념이나 조직도 대체할 수 없습니다. 그 장면을 보며 솔직히 예상 밖의 감동을 받았습니다.

길 스콧 헤론(Gil Scott-Heron)의 1970년 곡 '혁명은 TV엔 없다(The Revolution Will Not Be Televised)'가 이 영화와 공명하는 지점도 있습니다. 주류 미디어가 보여주는 가짜 현실 너머에 진짜 혁명이 있다는 풍자인데, 영화 속에서도 밥은 66년 알제리 전투를 TV로 보다가 습격을 받습니다. 혁명과 폭력은 언제나 TV 밖에 있습니다.

자주 묻는 질문

Q. '원 배틀 애프터 어나더'는 실화를 바탕으로 한 영화인가요?

A. 직접적인 실화 기반은 아닙니다. 다만 코인텔프로, 짐 크로우법, 러빙 대 버지니아 판결, 보헤미안 그로브 등 실존하는 역사적 사건과 기관에서 모티프를 가져왔습니다. 가상의 도시 '박탄 크로스'를 배경으로 삼은 것도 특정 도시가 아닌 미국 전체를 압축하기 위한 의도적 선택으로 보입니다.

Q. 존 펜의 연기가 얼마나 뛰어나다는 건가요?

A. 록조라는 캐릭터는 단순한 악당으로 그치지 않습니다. 과잉된 남성성 뒤에 숨은 불안과 모순, 자기 부정의 순간까지 존 펜이 층위별로 소화해냅니다. 크리스마스 클럽 면접 장면에서 "나는 피해자였다"는 발언 하나로 캐릭터 전체를 뒤집는 그 순간이 특히 압도적이었습니다.

Q. 블랙 코미디인데 실제로 웃기기도 한가요?

A. 웃음과 불편함이 동시에 오는 구조입니다. 세르지오 센세라는 캐릭터는 분명히 웃음을 주는데, 그 안에 담긴 정치적 풍자와 애정 어린 조롱의 밀도가 상당합니다. 마냥 웃고 끝나는 코미디가 아니라, 웃고 나서 불편해지는 영화라고 보는 게 정확합니다.

Q. PTA 감독의 기존 작품을 모르고 봐도 괜찮을까요?

A. 충분히 괜찮습니다. 이 영화는 PTA가 평범한 관객을 배척하지 않겠다는 의도를 담고 연출한 작품입니다. 전작 맥락 없이도 이야기 자체가 탄탄하게 굴러가도록 설계되어 있습니다. 오히려 처음 PTA를 접하는 분들에게 입문작으로 권할 만합니다.

Q. '프렌치 75'라는 이름은 어디서 왔나요?

A. 1차 세계대전 당시 프랑스군이 사용한 75mm 보병 야포의 명칭입니다. 빠르고 정밀한 무기로 유명했기에 이 저항 조직의 이름으로 쓰였습니다. 다만 영화 속에서 그 조직은 결국 내부 분열과 자멸로 끝나는데, 이름과 결말의 대조가 영화의 큰 아이러니 중 하나입니다.

보고 나서 오래 남는 영화가 있고, 다음 날이면 흐릿해지는 영화가 있습니다. '원 배틀 애프터 어나더'는 전자입니다. 제 경험상 이렇게 오래 생각하게 만드는 영화는 1년에 한두 편 나올까 말까입니다. 혁명과 가정, 이념과 사랑, 스펙터클과 헌신 사이에서 이 영화가 결국 무엇을 선택하는지 직접 확인해 보시길 권합니다. 지금 극장에 걸려 있을 때가 기회입니다.

--- 참고: https://www.youtube.com/watch?v=pbBMapi2cA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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